물리학/일반

불교: 반야심경

airoot 2025. 2. 27. 00:37

물리학의 관점에서 반야심경을 해석해 보고자 한다.

부처는 물리학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부처가 설한 반야심경은 물리학의 관점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물리학을 발전시키고 있고 뇌과학과 인공지능을 발전시키는 입장에서 현대의 관점으로 반야심경을 설명해보고자 한다.

 

반양심경에서 말하는 궁극의 지혜는 오온이 공하다는 것이다.

 

"五蘊皆空 度一切苦厄 -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사리자"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 오온이 공한 것을 비추어 보고 온갖 고통을 건너느니라.

 

"色卽是空 空卽是色 受想行識 亦復如是 -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

색이 곧 공이고 공이 곧 색이니, 감각ㆍ생각ㆍ행동ㆍ의식도 그러하니라.

 

불교에서 공은 비어있다는 뜻보다는 고정되어 있지 않고 변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어떠한 것도 고정되어 있지 않으므로 그것은 고유하다 할 수 없다.

 

불교에서의 주요 개념인 무아는 나라는 것조차 고정되어 있지 않고 고정되어 정의할 수 없으므로 결국 나라는 것은 없다고 할 수 있고 단지 변하는 나만이 존재한다.

 

또다른 주요 개념인 연기법은 인과론과 상호작용을 설명하고 있다.

 

1. 공

먼저 공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 현대에는 변하는 공도 있지만 비어있는 공도 설명한다. 사실 이 두개의 개념은 같다고 볼 수 있다.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변하는 공은 현시적인 관점에서 변하는 것도 있지만 세포레벨 관점에서 보면 모든 생명체의 세포들이 끊임없이 사라지고 새로 나타나므로 본연의 물질은 계속 남아 있을 수 없다.

 

양자역학에서는 물질의 기본입자는 보이지 않는 파동이라고 생각한다. 이 보이지 않는 파동은 상호작용에 의해 보일 수 있다. 즉 우리는 보이지 않는 입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입자들의 상호작용에 의해 보일 뿐이다.

 

우리는 우주가 진공으로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즉 이 진공은 완전히 빈 공간이라고 생각하지만 양자역학에서는 이런 진공 조차 양자요동에 의해 끊임없이 물질들이 생겼다가 사라지는 혼란스로운 공간이며 확율적으로 우주의 모든 입자가 존재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아인슈타인에 의해 많이 알려진 E=mc2은 보이지 않는 에너지와 보이는 질량을 가진 입자는 서로 같다는 것을 설명한다. 이는 "색즉시공 공즉시색"을 잘 설명하고 있다.

 

2. 무아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현시적인 관점에서 나는 계속 변하므로 과연 고정된 나는 존재하는가?

 

현대에 와서는 세포의 관점에서 인간의 세포는 끊임없이 사라지고 생성되므로 오늘의 나와 어제의 나는 동일하다고 볼 수 있는가?

 

또한 유전자에 의한 유전학의 관점으로 보면 인간은 많은 진화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수많은 형태 중 한 종류일 뿐 전혀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즉 특별한 나는 과연 존재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나는 다른 동물들과 다른 존재인가? 동물은 식물과 다른가? 식물과 세포는 다른가? 세포와 바이러스는 다른가?

우리는 특별한 곳에서 온 것으로 볼 수 없으며 특별한 곳으로 간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뇌과학에서는 자아의 존재에 의문을 가지는 수많은 실험들이 있다. 우리가 우리라고 믿고 있는 자아는 실존하는 것인가? 이 자아조차 실존하지 않을 수 있다.

우리의 뇌는 세상을 직접 보거나 들을 수 없으며 눈이나 귀에서 들어오는 신호를 해석해서 세상을 인식한다, 따라서 실재 세상이 없더라도 적당한 신호를 제공한다면 뇌는 세상이 있다고 인식하게 된다. 심지어 우리의 뇌는 감각세포들이 보내는 신호를 100%로 믿지 않고 적당히 수정해서 사용한다. 즉 우리는 이미 세상을 100% 그대로 인식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3. 연기법

물리학은 바로 인과론에 의한 학문이며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연기법은 물리학에서 기본적인 원리로 다루어지고 있다.

 

2024년 나온 드라마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에서 나오는 유명한 멘트가 있다.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커다란 나무가 쓰러졌다. 쿵 소리가 나겠는가, 안 나겠는가?”

이는 상호작용을 설명하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나무는 쓰러져도 쿵소리를 내지 않는다. 다만 강한 진동이 공기를 통해 퍼져나갈 뿐이다. 이 진동이 인간의 고막에 닿으면 인간의 뇌는 이 진동을 쿵소리로 인식한다. 즉 그 자리에 인간이 없다면 쿵소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를 바라보는 당신이 없다면 과연 나는 어떻게 존재하는지 알 수 있을까?

 

양자역학의 양자중첩 현상을 보면 물질은 세상에 확율적으로만 존재하다고 누군가가 바라보면 확율이 100%가 되어 보이게 된다. 즉 상호작용이 없다면 보이는 상태와 보이지 않는 상태가 동시에 존재하다가 누군가 보는 순간 보이거나 보이지 않거나가 결정된다.

 

밤하늘에 떠 있는 달은 과연 항상 그 자리에 있을까? 어쩌면 지구안의, 아니면 우주의 아무도 보지 않으면 사라졌다가 누군가가 보기만 하면 나타날 수도 있다.

(물론 양자중첩은 아주 작은 입자단위의 상호작용에 의해 작용되므로 커다란 달은 항상 작은 입들의 충돌이 있기 때문에 사실은 언제나 보이는 형태로 존재하게 된다.) 

 

대승불교의 반야심경에서의 공사상은 어쩌면 자연을 잘 관찰한 석가의 해안에서 나온 것은 아닐까 싶다.

 

인공지능에 관점에서도 인간, 또는 인간의 지능이 그리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면 어쩌면 우리도 좀더 쉽게? 만들 수 있을 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