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생물의 조상, 진핵세포 '루카'"에서 우리는 최초의 진핵세포를 알아 보았다. 이 진핵세포가 생명의 시작은 아니다. 진행 세포에는 핵, 리보솜, 미토콘드리아 등 이미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최초의 세포는 이보다는 훨씬 간단한 구조에서 시작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세포는 크게 지질, 단백질, 탄수화물, 핵산으로 구성되어 있다. 간략하게 보면 지질은 세포막을 형성하고 핵산은 DNA, RNA를 구성한다. 단백질은 구조를 만들고 탄수화물은 에너지를 제공한다.(구체적으로는 더 많은 일들을 한다.) 그럼 이러한 구성요소들이 어떻게 생겨나는지 파악하는 것인 화학진화의 주요 목표가 된다.
그럼 세상에 생명이 처음 태어난 순간은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생명이란 것이 처음부터 세포와 유전자로 구성된 건 아니었다. 그보다 훨씬 더 단순하고, 작고, 보잘것없는 분자들이 복잡하게 얽히고 섞이며, 어느 순간 경계를 넘어섰다. 그것이 바로 화학진화, 즉 생명이 아닌 물질이 생명으로 바뀌어가는 이야기의 시작이다.
소련의 생화학자 오파린은 『생명의 기원』이라는 책에서, 지구 초기의 바다 속, 이른바 ‘원시 수프’에서 생명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가설은 수십 년 뒤, 미국의 밀러와 유리라는 두 과학자에 의해 실험으로 증명되었다. 그들은 원시 대기와 비슷한 환경을 만든 유리 플라스크 안에서 번개를 흉내 낸 전기 불꽃을 흘려보냈고, 며칠 후 플라스크 안에는 실제로 아미노산이 생성되어 있었다. 아무것도 없던 곳에서 생명의 재료가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생명은 단순한 분자들의 집합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 분자들이 모여 경계를 이루고, 내부와 외부를 나누는 것이 바로 생명의 시작이었다. 과학자들은 이 경계를 만드는 구조를 실험으로 재현해보았다. 그들은 물속에서 코아세르베이트라는 작은 방울을 만들어냈고, 리포좀과 마이크로스피어 같은 원시 세포막 구조들을 관찰했다. 이 방울들은 스스로 내부를 구성하며 작은 세포와도 같은 형태를 보였다. 생명은 점점 모습을 갖춰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생명의 설계도를 복사하고, 지시하고, 조절할 수 있는 어떤 분자의 존재가 필요하다는 의문이 생겼다. 그 해답은 RNA라는 분자에서 찾을 수 있었다. 원래는 DNA가 정보를 저장하고, 단백질이 역할을 수행한다고 알려졌지만, 1986년 월터 길버트는 ‘RNA 세계’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RNA는 스스로 복제할 수 있고, 심지어 리보자임이라는 형태로 효소처럼 작용할 수도 있었다. 이중의 역할을 가진 RNA는 초기 생명체의 모든 기능을 혼자서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불안정한 RNA는 점차 더 안정적인 DNA와 효율적인 단백질에 자리를 넘기고, 현재의 생명체 구조가 완성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은 단지 실험실 속의 이론만은 아니었다. 깊고 어두운 바다 속, 심해 열수구 근처에서는 오늘날에도 뜨거운 물과 금속이 만나 끊임없는 화학 반응을 일으키고 있다. 많은 과학자들은 이곳에서 생명이 시작되었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2015년에는 고에너지 레이저를 이용해 핵산을 합성하는 데 성공하면서, 다양한 방식의 유기물 형성이 가능하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이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리가 아는 생명의 시작은 단지 짧은 단서일 뿐, 그 비밀은 여전히 수십억 년 전 바다 속 어딘가에 숨겨져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생명은 어느 날 갑자기 ‘짠’ 하고 등장한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래 전부터 수많은 화학 반응과 분자들의 조합 속에서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태동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화학진화, 생명의 서막이다.